스큐진 인터뷰를 하며... (2003-01-27)

작성자  
   achor ( Hit: 1920 Vote: 22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벌써 1주일도 더 된 이야기를 이제서야 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디카, 충전기 탓이다.
지난 제주도 여행 이후에 충전기의 전원변환기를 잃어버린 듯 한데
그걸 새로 구입한 후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써놔야지 했던 게 어느새 1주일이나 흘러버린 게다.
여하튼 사진은 추후에 수정하여 올려놓도록 하겠고.



나라는 인간은 시간 관념에 있어서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던 탓에
지난 번 한 차례 인터뷰를 연기 했음에도
이날 오후 2시, 약속시간에도 어김 없이 내 침대 위에서 자고 있던 중이었다.
우리의 박하늘 기자는 약속장소에서 내게 수십차례 전화를 걸고 있던 중이었고.

전화벨 소리에 깨어나 기자에게 연신 사과한 후 오후 7시로 약속 변경.

최근 나를 사랑하는 눈빛이 남다른 vluez의 밥 먹고 가라는 외침을 뒤로 한 채
7시, 약속장소인 성대앞 소풍,이란 카페로 나섰다.
언제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한때는 화염병과 최류탄의 물결 속에서 데모를 하기도 했고,
또 한때는 하늘하늘한 여인과 거닐리도 하였던 추억의 장소. 학교 앞.
하얀 눈이 조금씩 내리던 그 거리는 언제나처럼 아름다웠고, 추억어렸다.

카페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나를 반긴다.

헉. 이제 막 스무 살이란다.
나와 7살 차이라면 내가 대학 1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어야 했던 그 나이. --+
그런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서 같은 수업을 받아야만 하는 내 현실을 다시금 실감하며,
인터뷰에 응한다.

나는 별로 자랑할 것 없는 내 삶을 장구하게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대목에서는
나처럼 살지 말 것을 이야기해준다.
공부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거라. 후배들이여. --;

대학 2학년 때 실개사라는 경제학과 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97학번 위주로 구성된 당시 우리 멤버들은 평균 신장 180 이상에 늘씬하고, 멋진 경제학과 킹카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술을 마시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밖에 없는,
경제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그저 그런 노는 모임이었다.
덕분에 후배들 역시 나를 닮아 학점과는 영 친밀하지 못했고.

그 후배들은 나를 참 많이 따라주었다.
나 또한 경제학과 97학번 내에서 이른바 F4와 같은 그들의 위상을 아주 좋아했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1년을 지나 2학년 과정을 마칠 무렵 나는 첫 번째 입대와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나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내 삶을 칭송해 주었다.
선배의 삶을 동경하였고, 선배처럼 살고 싶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그런 칭송을 마땅히 받아야 했다고, 그 당시에는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2003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는
이미 내 삶에 자만심을 잃은 지는 오래다.
나는 내 삶이 그 누구에게도 모범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내가 삶을 깨달아 누군가에게 어떻게 살아라, 하며 이야기해줄 입장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내 삶이야 말로 기형적으로 틀어져 버렸고,
어쩌면 지금의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이 결국은 내 삶을 아무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삶으로 만들어 버릴 것을 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삶을 이야기 해야 한다면
나로서는 저 동산을 힘차게 오르는 개미들 무리 속에서 그 한 구성원으로 함께 힘차게 오르라는 말 이외의 다른 답을 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을 향해
끝없이 줄지어 있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자신의 삶을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후배들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 achor WEbs. achor



+ 2003년 2월 8일 04시 53분 [17]

이제서야 변환기를 재구입하여 사진을 등록하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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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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