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2002-10-20)

작성자  
   achor ( Hit: 1814 Vote: 9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미안하다.
게의치 않을 걸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스스로 면목이 없을 뿐이다.

언젠가는 삶의 자세나 지향점이 비슷했던 적도 있지만
나도, 너도 변한 지금에 와서 우리가 각기 다른 길을 걷는 것도 이상한 건 없겠지.

다만 아직도 나는 어둡고, 특별한 미래 없이 흔들리는 젊음을 좋아하는 반면
너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진 밝고 건강한 미래를 준비하고 있던데
네 삶에 대해 내가 이야기한 것을 나는 지금 많이 후회하고 있다.

너 또한 내 삶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너는 네 신념대로 별 간섭하지 않은 채 잘 참아왔다만
나는 이번에 그러질 못했다.

옹색한 변명이다만
네가,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네게 별 말을 하지 않았을 게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나 또한 타인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너는 앞으로도 좋든 싫든 내 삶이 지속되는 한 만나서 함께 삶의 고락을 나눠야할 것이니
나는 네게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고, 그래서 몇 마디 했던 것 같다.
미안하게 됐다. 별로 게의치 않을 것은 알고 있다만.



거래라는 건 그런 것 같다.
네가 더 많이 걷지 않으면 내가 더 많이 걸어야 한다는 의미.
나는 너와 누가 더 많이 걸어야 하나 따위로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네가 더 많이 걸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상대방이 너라면 내가 더 많이 걸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뭐 별 것 아니잖냐. 그저 조금 걷는 것 뿐인데.

그러나 그걸 따지는 모습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네가 걷지 않으면 내가 걸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너 또한 네가 조금 더 걸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주길 바랬다.
뭐 별 것 아니잖냐. 그저 조금 걷는 것 뿐인데.

마찬가지다.
네가 술값이 없으면 내가 내줄 수도 있고,
내가 술값이 없으면 네가 내줄 수도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8,200원 카드 긁는 걸 지켜본 것 뿐이니 오해하지는 말거라.
그냥 좀 느끼고 싶었다. 그런 것들은 특별하지 않다는 걸.



내가 가장 아쉬운 건
내가 네게서 느끼고 있었던 그 멋으로부터 네가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점이다.
알고 있다. 그 멀어짐이라는 것이 어쩌면 더 건강하고, 건실할 수 있다는 건.
그렇지만 나는 네가 젊은 날에 공유했던 그 젊음의 특권들,
이를테면 무엇이든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고,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던 넓은 배포 같은 것들이 그립다.
이미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 차 좀 손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처럼 네가 혹은 내가 될 것이 나는 두렵다.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네 삶에 대해 내가 이야기 한 점.
물론 네가 삐졌다거나 화냈다거나 특별한 반응을 보인 건 않았다만.
스스로의 자책감이려니 하고 이해해라. --;

그러나 각오하라.
여자친구 있다고 그토록 나의 염장을 긁어놓았지만 열 받으면 나도 연애해 버릴 것이다!
모르겠지만 요즘 나는 엄청난 소개팅 물량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vluez든 suncc든, 나를 소개팅 시켜주기 위해 안달이 나 있으니 각오하라! ^^;

일요일 밤

당연히 오른쪽 여인이지. --+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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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2002-10-21 01:35:23
아. 아무 사이도 아니다. 또한 완벽한 초상권 침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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