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한 여고생 그 후 6 (1999-08-29)

작성자  
   achor ( Hit: 1256 Vote: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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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Love

『칼사사 게시판』 34056번
 제  목:(아처) 한 여고생 그 후 6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8/29 15:34    읽음: 64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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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혀질 무렵이면 문득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여기 이렇게 
      가만히 서있다 보면 추억의 사람들이 왕왕 찾아와 엇갈린 인
      연을 만들곤 한다.

        내가 東邪西毒을 좋아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황량한 사
      막의 외딴 여관 속에서 이런저런 사연이 얽힌 사람들이 오가
      며 어느덧 흘러버린 4년이란 시간들...

        이제는 여고생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아이에게 아직 
      여고생 말고 다른 명칭을 찾아줄  수 없다. 힘든 일이다. 그 
      교복 입은 풋풋한 이미지에서  늘씬한 미녀의 몸매를 연상해
      내는 것은. 그런데 시간은  이미 흘러버렸다. 시간에 저항하
      는 건 의미 없다.

        1996년에 처음 알게 됐으니  벌써 4년이나 흘러버린 게다. 
      그때 난 갖가지 설렘으로  가득 찬 대학교 신입생이었고, 그 
      아이는 한참 힘들어야할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남겨진 기억은, 이과를 가려고 노량진에 있는 학원을 다니
      던 시절  가끔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그 아이에게 연락했던 
      것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별볼일  없는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다.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그 아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아
      이는 그렇게 1년에 한두  번 연락하면서 나 알아?,로 첫마디
      를 시작한다.

        "물론이지. 정말 오랜만인걸."
        "응. 잘 살아?"
        "그럭저럭. 넌 어때?"

        근황을 물으며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균형이 잡혀있다.

        "우리 한 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그 아이는 침묵한다.
        나도 침묵한다. 아무 때나 보채는 게 아니다. 가만히 있으
      면 저절로 되는 일이 있다.

        "아, 미안. 벌레 한 마리  잡고 오느라고.", 역시 터프 하
      다. 그 아이는 바퀴벌레 한 마리에 몸을 떠는 뭇여자들관 다
      르다. 맨손으로 내리쳐  죽어버리곤 손바닥에 묻은 바퀴벌레 
      내장액을 쓰윽 혓바닥으로 핥을만한 아이다.

        "글세, 만나지 않는 편이 더 낫겠어."
        "그래... 그런데 왜?"
        "어쩐지 그래야할 것 같아."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은 여전히 통용된다.  정말 그렇
      다. 처음에 어떻게 관계가 맺어지느냐는 앞으로의 진로를 좌
      지우지한다. 처음 쉽게 만나지  못했다면 그 벽은 쌓이고 쌓
      여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가볍게 
      만나는 것이 그렇게 가벼운  것만은 아닌 게다. 아니면 평생 
      무거움 속에서 짓눌려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

        나 역시 그 아이의  모습이 궁금하긴 하지만 참을만 하다. 
      그런 불안함은 나도 갖고 있는  게다. 얼굴 모른 채 정을 쌓
      아오다가 직접  만나 그간의  공든 탑이  모조리 무너트리는 
      일. 그 불안함은 내게도, 그 아이에게도 상주하고 있다.

        그 아이는 또 언제  훌쩍 떠나버릴련지 모른다. 항상 그래
      왔다. 아무때나 슬쩍 다가와서는  푹 기대어 있다가 정이 들
      만하면 아무말 없이 사라져버리기. 등대지기,란 초등학교 시
      절의 동요가 문득 생각난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
      람을...

        東邪西毒은 우릴 위해 따뜻한 끝마디까지 남겨두었다.
        떠난 후에 그 가치를 안다...

        여름이 다 지난 이제서야 슬슬 허물이 벗겨지는 내 어깨를 
      보며 여름이 다 지난 후에 그 가치를 안다,고 말하며 그리움
      을 토로하는 건 조금 우습겠군.

        어쨌든 1999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 아이는 다시 내 앞
      에 섰다.








                                                            98-9220340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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