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던 대부분은 학부제로 입학하신 분들이 아니라
학과제로 입학한 분들이었습니다
학부제 문제를 절실히 느끼는 건 학부입학생인데도
어찌 그리도 학부생은 적었을지요.
그리고 발제 속에서 좋은 말이 많았지만
정작 제가 듣기엔 그건 다 말장난 같더군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런 논리보다도 실질적 제도개선입니다...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전 `95년부터 귀아프게 들어서 이젠 지칩니다...
맨날 그런 말만 하고 언제 제도 개선하실런지요...
하나 예를 들까요?
우리 연세대학교에서는 전체수강편람을 학교에서 배부하지 않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에게는' 그것을 배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부제 하에서라면...
교무차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공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차원이라면...
왜 그것을 만들지 않지요?
다른 학교는 다 하는데, 왜 우리만 안 하지요?
예산 때문이라면, 글꼴을 줄이고 한 페이지에 몇 전공을 넣으면...
종이질 조금 나쁜 거 쓰면 되잖겠습니까?
제가 신방 전공을 한다고 치죠...
수강편람을 문과대에서 한 번, 사과대에서 한 번...
두 권의 수강편람이라...
오히려 그게 더 시간낭비, 돈낭비 아닌가요?
일일이 제 '전공'을 위해 그래야 한다구요?
질문 시간에는 이상한 학칙 하나 말씀드렸었지만서두...
전공도 그래요...
어느 영문학 수업에서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토론식 수업하면 안 될까요?
대답은 그러셨더랬습니다
"나도 하고 싶지만, 분반을 할 수 없으니 도리가 없구나...
나도 이러는 거 좋겠니?"
전공이 100명이 넘어가는데도 교실이 없다고 분반하나 안 합니다...
다른 학교는 그 대안으로 수강신청을 한 학기 전에 받습니다...
일단 수강생의 숫자를 보고 교수와 강의실을 조정합니다...
인터넷으로 미리 한 학기 수업계획도 볼 수 있구요...
왜 우리는 그걸 못 하죠?
덕분에 제가 듣고 있는 어떤 과목의 경우...
중간고사 전 주까지 교실을 찾아 이 건물 저 건물 옮겨다녀야 했답니다...
늘 개설되는 과목은 똑같고...
새롭고 공부 좀 할만한 과목은 없고...
막상 공부 하려면 책이나 겨우 달달 외우고...
지금 제가 듣는 수업 중엔 특별히 교재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수업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수업 중의 하나입니다...
선생님의 열성적 강의와 진지한 수업분위기 덕분에...
그 분이 여기저기서 발췌하신 강의노트 덕분으로...
특별한 교재 없이도 그 과목을 소화하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한 수업은 영화를 보는 수업입니다...
한 수업은 회화 수업입니다...
이런 수업의 경우도 선생님들께서 직접 자료 준비 하십니다...
교재라는 형식을 빌려 미리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김형철 선생님께서 그러셨죠...
앞으로는 교재 없는 선생님들은 퇴출해야 한다고...
이런 토론식의 수업이 늘어날 상황에서...
멀티미디어 기자재를 이용한 수업이 많아지고...
저희가 조사해서 발표하는 수업이 늘텐데...
이런 경우엔 무슨 수로 교재를 만드나요?
오히려 교재 만드는 게 더 억지 아닌가요?
다중전공과 관련해서 문과대에 갔습니다...
별다른 말이 없더군요...
상경대에 갔습니다...
친절하게도 자료 복사해주고 어디어디 가서 문의하라 하더군요...
자료를 봅니다...
사과대를 갔습니다...
신방과 사무실로 가서 문의합니다...
미리 9학점 들어야 면접을 볼 수 있다더군요...
결국 신청을 못 했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 다중전공 기준은 들쭉날쭉입니다...
문과대만 해도 전공승인이 접수된 게 언젠데
여지껏 결과를 알 수가 없습니다...
문대는 36학점, 사과대는 42학점, 상대는 30학점짜리도 있던 것 같고...
신청방법도 어디는 신청 후 전공 수강, 어디는 수강 후 신청...
그나마 그 기준 발표도 이번 학기 초...
도대체 다중전공 만든 이유가 뭔가요?
부전공을 남겨둔 것도 그렇고...
졸업을 6학기까지로 단축시킬 수 있게 하구선...
3,4학년 과목이라고 하는 건 뭔가요?
조기졸업을 위해서 140학점을 들어야 하는 건 또 뭐구요?
할 말은 참 많지만...
이런 제도들이 엄청나게 학부생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
그리고 그런 거 하나하나 검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문과대의 2중전공도 그래요...
수강신청 대란도 그래요...
선수강 제도 만들어 강의실과 교수님들 조정하고...
각 전공의 특색에 맞는 과목을 개편하고 선생님 모시고...
순수학문이지만, 그렇다고 사회와 유리되지도 않는...
예를 들어 영문학 같으면 '기독교와 영문학'같은 거 말이죠...
꼭 필요한 과목이고 다른 학교 다 있지만 우리만 없어요...
그것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만든 학교'라면서... 피이...
그리고 몇몇 전공끼리 함께 하는 과목...
통합교과목이면서도 심화전공 수준으로 할 수 있을만한 과목...
'한국 문학과 현대사'라던지,
'셰익스피어와 영화'라던지...
'프랑스 문학 속의 요리실습'이라던지...
'독일어와 번역프로그래밍'이라던지...
학생들, 교수님들과의 의견이 교환된다면...
이런 수업방식의 전환을 통해 사고를 다양화하고...
무엇보다 전공 간의 서열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순수학문간의 교류를 통해 진정한 학문의 세계에 흥미를 느낀다면
대학안내에 있고, 학부제 길라잡이에 있지만...
실제론 개설 안 되는 과목들이 많아요...
물어보면...
"사람들이 신청하질 않아서 못 만든다고..."
애들이랑 얘기하면 그런 거 만들면 듣겠다는 사람이 얼만데요...
다 이건 소통이 안 돼서 그렇지...
이런 거 저 혼자 생각했겠어요?
다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얻어낸 현실적 대안이지요...
하지만 누구한테 말합니까?
학생회라는 대표기관이 있지만, 어디 우리 말 들어준 적 있나요?
세상일에 너무 바쁘고...
학교 본부에 건의를 드릴라니 길이 없고...
천상 선생님들께 말씀드리면...
"우리도 그러면 좋겠지만, 행정적인 절차 때문에..."
몇 년이 지났습니다...
`96년 초와 하는 얘기는 늘 똑같습니다...
어느 후보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왜 여지껏 이런 걸 방기(放期)하셨는지요..."
전 방기한 적 없어요...
전 제 나름대로 학부제 하에서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생회 사람들과도 이 문제 가지고 많이 얘기했고...
제가 다른 학교 다닐 적에 모은 자료까지도 넘겼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목이 콱 막히더군요...
이런 제도에 대한 문제는 뒷전이었죠...
돈이 그리도 중요하고,
정부의 지원이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요?
학생들은 언제까지 고등학교 4학년 5학년 해야 하나요?
언제까지 개론만 듣다가 졸업하나요?
언제까지 객관식과 단답형에 매여 사나요?
과연 거기 있는 분들이
우리처럼 학부제를 정말로 고민하신 분들인지 의심이 갔습니다...
간단한 발제문이라도 있었더라면...
좀더 그 공청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문과대, 공대, 상대, 사과대, 생과대, 이과대...
수많은 단대가 있으니 거기 있는 학생들 중 몇몇이라도...
패널로 오도록 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패널은 전부 4학년이고...
문제의 해당자는 전부 96,97,98이니... (끽해야 3학년...)
문제가 보였겠느냐 그 말입니다...
거기 나오신 분들...
학제개편안을 반대하는 물결이 느껴진다고 하셨죠?
하지만,
공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학부제가 그리 나쁜 제도만은 아닙니다...
좀 생각을 열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니까요...
다만 그런 문제를 겪으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학내 3주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거죠...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제도를 과감히 바꾸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반영해서...
개혁을 해야지요...
학부제 제대로 할려면 1년만 고생하면 됩니다...
대신 그 1년동안 행정체제를 완전히 바꿔야지요...
학부사무실 중심체제...
전공간 상호협조체제 구축...
단과대간, 타대와의 정보교환체제 확보...
졸업 필수학점 하향 조정...
다중전공의 폭 확대...
통합적 전공 인정기준의 확정...
그 다음에 대학원 제도 손보면 됩니다...
그것도 제대로 하면 한 5년이면 됩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식의 대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아요...
늘 했던 얘기 또 하고...
공청회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당국은 제도를 고치려고는 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힘들어하는 게 뭔지 모르는 채로...
'봉사 코끼리 더듬는 격'이고...
교수님들은 충분히 저희의 의견을 수용해주실 수 있을 것 같고...
학부제 문제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실 수 있을텐데...
저희가 다가가서 말씀드릴 길은 요원하고...
학생회 여러분들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언제까지나 문제를 그렇게 보고...
행정적인 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숨이 막히더군요...
공청회가 끝나고 울었습니다...
속상해서...
`96세대라고 불리는 우리 세대가 너무 불쌍해서...
늘 실험용 쥐가 되는 우리 팔자가 너무 억울해서...
누구도 우리의 진짜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소주를 500cc 컵에 부어 원샷을 잇따라 했습니다...
취하지는 않고 눈물만 나더군요...
말 못하고 끙끙 앓는 우리 친구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내 자신에 대해 너무 화가 나서...
저는 차라리 괜찮습니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들...
존경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연세대학교'...
저는 나이가 있으니 조만간 군대를 가겠지요...
하지만,
제가 제대했을 때...
그 때까지도...
학부제가 아직도 정착이 안 돼서
실험용 쥐라고 비아냥거리는 후배가 있으면 어쩌죠?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고 재수하는 애들 생기면 어쩌죠?
학내 3주체가 계속 대립하고 불신하고 반목하는 모습이면 어쩌죠?
다시는...
`96세대와 같은 비참한 학번군(學番群)이 없기를 바라며...
정말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개혁안이 마련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