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다 무슨 짓을 한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름 7글자가 다 들어가질 않아서 보시다시피 저따위로 한글로 이름을 써버렸다.
쓰고 보니까 왠지 몰라도 내가 글을 쓰는게 아닌거 같은 느낌이군. 뭐면 어떤가. 어차피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말해버렸다.
현재의 시점은 바로 중간고사를 2주 앞두고 있는 시점, 즉 학원의 입장에서는 아주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내질러 버렸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무책임하다던가 책임감 없고 아이처럼 행동한다는 소릴 들어본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내가 최소한 해야 할 일들은 하면서 살아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학원에서 부원장에게 그 소릴 들었다. 자기가 지금까지 학원을 운영하면서 이선생처럼 책임감없고 실망시키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뭐라고 대답하는게 최고의 정답이었을까, 하고 한참이 지나버린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본다.
그 시간에 내가 내린 정답은 "죄송합니다" 였다. 어쨌든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이상하게도 짓누르고 있었던 짐 하나는 덜어버릴 수 있었으니. 나를 앞으로 괴롭히게 될 문제를 처리하는 댓가로써 한 사람에 대한 실망을 얻었다면 과연 내가 남는 장사를 한 것일까 하는 문제가 남기는 하지만, 현재의 나로써는 확실히 남는 장사를 해버렸다고 볼 수 밖에.
어쨌든, 나에게 남아 있는건 두번 남은 출근과 그 기간동안 시험범위 진도를 빼는 일이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주라 생각하고 잡아뒀던 다음주의 많은 계획들이 통째로 날아가는게 조금 짜증이 날 뿐이다.
나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이다. 그래서 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손해를 감수할 상황이 아닌한 절대로 그 상황을 지속시키지 않는다.
학원일이란건 나에겐 손해보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확실히 느낀 것은 지속적인 학원일은 나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해서 몇 해가 지난후 푼돈에 안주하려 들었던 내 모습에 대한 스스로의 저주뿐이란걸 빨리 깨달았던 것이다.
경영자의 입장과 사원의 입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경영자는 절대로 사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원은 경영자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절대로 쌍방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서로 이해하고 행복한 직장생활?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 쌩쑈다. 입장의 차이가 있으면 당연히 차이점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 차이를 그저 대충 때워야지 하고 생각한다면 결론은 당연하게도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결정적인 순간에.
부원장은 끝까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의 입장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부원장의 입장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일뿐이기 때문에.
사실 학원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부분도 없잖아 있긴 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아르바이트였던 일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해달라는 요구는 나에게는 그저 무리한 일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지는 급여는 단지 파트 강사의 급여.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요구는 전임강사의 요구. 나에게 남은 선택은 어떻게 이 위치를 빠져나가야 하는 것인가 였을 뿐이고 나는 돈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자유를 택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한순간에 "실로 무능하고 책임감도 없고 최고로 실망스러운" 인간이 되어버렸다. 뭐..좋다. 실제로 나는 그런 인간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최소한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던지기 전에 한번쯤 더 생각해 보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건 다 참을 수 있지만, 다 큰 어른을 아이로 보고 말하는 소위 나보다 나이 처먹은 인간들의 경험지상주의는 좆도 아니게 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접할때 마다 속으로 욕을 날리면서도 나는 그따위 인간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뒤돌아본다. 결국 나도 그따위 인간이 되어가는군. 기분 더럽게.
나의 강의는 깔끄럽지 못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끌어 당기는 카리스마가 있지도 않다. 게다가 나는 강의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지도 않다. 더더군다나 학원에서 원하는 학교 교과서 진도나가는 것을 죽기보다 짜증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 이정도라면 어느 원장이라도 나를 짜르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선택은 어떻겠는가? 결과를 알고 있는 나로써는 하루라도 빨리 내지르고 싶었다. 내가 짤릴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분명히 가능한 선택중에 하나였으나, 그렇게 살기에는 내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이런 기분에 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끼어서 어중간한 느낌의 삶. 이것도 저것도 하긴 해야 하는데 둘 다 걱정은 많이 되고 있으나 별다른 진척은 보이지 않는 삶. 결국 둘 중에 한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병행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게되는 삶..
내가 학교를 다니는 소위 학창시절엔 우리집이 학원을 경영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학원에 대한 어느 정도 정형화된 이미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교육제도가 바뀌어 버린 현 시점에서는 쓸데없는 감상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문법이고 어휘고 개뿔이고를 떠나서,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면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구차한 변명이겠지만, 그런 공부를 시켜주고 싶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서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부원장은 현재 성적만 올리면 된다는 학원방침을 계속 강조하고 있었다.
때때로 부원장은 그런 말을 했었다. 아이들의 성적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그 얘기를 들을때마다 속으로 반문했었다. 중학교때 성적을 위해서 아이들의 미래에 태클을 걸어도 좋은가, 라고. 최소한 내 관점에서 볼 때, 학교 성적을 위해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미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있던 미래를 매일매일 조금씩 갉아먹어 나가는지도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학교가 아닌 학원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볼 때마다 참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나를 믿고 나를 따라오는 아이들을 나는 그저 돈이라는 매개체를 위해서만 직업적으로 대하고 있다. 처음으로 결혼하면 귀여운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던 나의 학원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들 뿐이다. 아참. 요즘 중학생들은 발육이 좋아서 그런지 최소한 고등학생 이상으로 보인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일까.
긴 시간동안 참으로 쓸데없는 소리들을 주절주절 풀어놨다. 이렇게 풀어놓으면서 한가지 생각이 드는데, 어서 빨리 홈피 만들어야 겠다 -_-;; 내가 답답할 때 내지를 수 있는 공간이 최소한 하나정도는 있어야 하겠다. 아처군. 어여 작업 마치고 나에게 계정을 주시게 --;
근데...내가 대체 뭘 시작했다는 소린지는 나도 모르겠다. 너무 두서없다. 그래서 뭐 어쩔꺼냐?!!! 덤벼라 -_-;;
2002-09-14 05:20:15
sakima
몰랐네. 너도 학원강사 했었어?
나도 신물나게 했었지. 난 심지어 학교 선생님도 했어.
그시절엔 누군가를 가르치기엔.즉 후학을 양성하기엔
너나 나나 그리고 아처나 자아가 하고싶은게 너무 많았고
스스로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완성이 우선되는 시기였다 생각해. 그러니 그때 넌 잘한거야.13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아직 후학양성할 생각은 없는데...또 10년쯤 후엔 다시 누군가를 가르쳐 보고싶기도 해.
그때는 지식의 완성 보다는 정말 인생에 대해.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얘기해 줄 수있지 않을까?
2015-09-14 22:28:28
achor
동감. 스스로의 완성이 필요한 시기였어.
결국 본질은 돈 벌기 위한 알바였음에도, 그렇다 해도 맡은 바 업무에 책임과 이상을 품고 노력한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으리라 봐.
다만 우리가 그랬었듯,
우리가 스스로의 완성을 끝낸 후, 혹은 스스로의 완성을 끝냈다고 착각한 후 누군가에게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이야길 때,
그저 꼰대들의 퀘퀘묵은 잔소리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
우리가 그랬었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