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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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411 Vote: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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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이상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도 같아.
나는 자연적인 삶에 환상과 동경심을 품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정의한 자연적인 삶에는 경쟁이 누락되지 않을 수 없더구나.
나는 그럴 때 인간과 동물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곤 했어.
자연에는 분명히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또 강한 호랑이라도 같은 종끼리 결국은 경쟁을 하잖아.
경쟁은 신이 창조해낸 정의라는 사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단다.

알다시피 내 성향은 극단적인 면이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나는 완벽한 자유를 꿈꾸는 극단적인 리버럴리스트쪽이거든.
관심 있던 경제학적으로도 국가의 무역장벽이 완벽히 철폐된 완전자유무역을 꿈꿨었어.
경제학적 지식이 다소 부족했던 김우중에게 열광했던 까닭도 그쪽이고.
물론 여전히 경영인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몸소 실천한 김우중을 가장 좋아한다만. ^^;

그렇지만 네가 멀리 있던 시간동안 나는 다소 생각이 변했는데
정부의 기업에 대한 간섭이 적어 보다 자유로운 미국식 경제체제,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고, 배분을 더 중시하여 자유가 일정부분 제한받은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더 좋아졌어.
이러한 생각의 변화에는 내 경쟁에 대한 거부감과
인간은 동물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서 공동체적 삶을 위한 규약의 필요성이
그 배경이 된 것 같아.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역할을 배분해야 하고,
또 그렇다면 조금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정당한 경쟁은 당연한 일일 거야.
물론 나 역시 경쟁하는 행위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만
때로는 승리를 위해 유치해질 수도 있겠고, 비겁해질 수도 있나 봐.
또한 그 행동의 방식은 대체적으로 스스로의 신념과 각오에서 기인하게 되고.
이까짓 것 내가 조금 포기해도 좋으니까 유치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게 싸우겠다,라고 각오하면 되거든.

영화나 소설에서는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편이지만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무모한 용기가 많은 손해를 끼치기도 하니까
네가 홀로 고고하게 유치해 지지 않으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게야. --;

만약 내가 네 입장이라면
나는 특별히 튀지 않고 중간 정도만 유지하면서 대충 평균적으로 행동할 것 같아.
사람들이 유치하면 그 평균만큼 유치하고, 사람들이 비겁하면 그 평균만큼 비겁하고.
너무 비겁하여 멸시 받거나 너무 정의로워 따돌림 받는 일 없이,
또 그렇다고 홀로 고고하여 허울뿐인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렇지만 나는 네가 단순하다거나 유약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아.
내가 아는 너는 리더적인 기질이 있어서 어디서든 내 자신의 빛을 발하며,
넓은 상식과 적어도 외적으로는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

구린내 나는 단편적 지식들이 네 전공적인 지식을 의미한다면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니까 네 얘기를 많이 듣게 되겠지.
또한 나는 내가 관심있고, 흥미있어 하는 얘기들을 네게 들려줄 수도 있겠고.
문학이나 음악, 그림이나 영화 같은 문화,
또 정치나 사회, 철학이나 역사 같은 인문사회학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멋있게 보지만
자신의 관심분야에 미쳐있는 미치광이들 또한 그만큼 멋있는 사람인 것도 같아.

나는 네가 전공공부에 몰두하여 결국 그것을 성취해 냈을 때
네 노고를 스스로 치하하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가볍게 볼 것이 걱정되는 편이야.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독하게 힘든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낸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인정받길 바라고, 또 자신과 같은 고통을 느껴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가볍게 보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누구든지 자신의 삶은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는 할 거라 생각한단다.

비록 니 눈에는 내 삶이
빛나는 광채를 따라 저항없이 빨려들어가는 나의 일상을 누리고 있다고 볼 지 모르겠다만
나 또한 내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단다. --;
물론 경쟁이나 도전, 질투와 시샘 같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혼자 방구석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의미 없어 보이는 고민일 지라도. --+

나는 요즘
나의 나태함이나 게으름이 더욱 열정적이고 치열해 지기를 바라고 있어.
얼마든지 나태하고, 게을러도 좋은데
다만 그것이 내가 깊이 생각하고, 뜻과 철학을 갖고 진행시켜 나가는 일이기를 바래.

네 미래의 삶을 의심하지 말렴.
나 또한 네 결실이 행복으로 나타날 지 확신을 하지는 않는다만
너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네 행복을 찾아서 나아가고 있다는 건 확신한단다.

지금까지 어려운 난관을 잘 헤쳐나갔던 것처럼
작금의 갈등과 고통도 결국은 잘 이겨낼 거야. 너는.
나는 중요한 일에 빠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나 대신 보내야할 때
너를 보낼 만큼 너의 능력을 확신한단다.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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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3/16/2025 19:3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