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2002, Start 2003 (2002-12-29)

작성자  
   achor ( Hit: 1644 Vote: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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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tc

작년이나 재작년에도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크리스마스든 연말이든 그 분위기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저 언젠가 보았던 '세런디피티'란 영화가 아스라이 떠오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정기적인 글을 쓸 때면
과거에 써왔던 흔적들을 찬찬히 살펴보곤 하는데
병역을 마친 후 신체적인 구속에서 완벽히 해방된 지난 2001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정체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보하지 않는 것 또한 퇴보라 하였다.
이미 세상은 엄청나게 뒤바꿔 버렸는데
나는 2년 전에 하였던 디아를 여전히 하고 있고,
3년 전에 하였던 일을 별 변화 없이 그대로 하고 있다.
나는 학생이라는 신분 속에 안주하며,
마치 폭설이 내린 깊은 산속, 파묻혀 버린 산장처럼, 그렇게 움직임 없이 잠들어 있다.
내 삶은 지금 방치되어 있다.

그런 것이 젊음의 특권일 것이라.
스무 살에는 무슨 일을 하여도 젊은 열정과 새로운 시도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내뿜을 수 있었지만
2003년을 맞이하는 나에게는 더 이상 그런 여유는 없다.
삶의 방향과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이미 가득 차 있고,
그렇게 한 번 선택한 길은 돌이킬 수 없이 나를 사로잡아
어쩌면 평생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압박감만이 내게 남아 있을 뿐이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당당하게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명하게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현명하지는 못했다.

내가 현명하였다면
고등학생 시절에 보다 공부를 했어야 했고,
대학생 시절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독립 운운하는 대신 도서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거나 학점에 신경 썼어야 옳았다.
그것이 고시나 취업의 합격을 보장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가능한 선택의 폭을 넓혀 주어 나는 내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처음 사회를 접하는 시작점이 결국 대개의 삶을 결정 짓는다는 그 선배들의 발자취를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다.

2001년, 그리고 2002년,
나는 티없이 게을렀고, 마냥 자유로웠다.
갖은 명분과 핑계를 만들어 나를 합리화 시켰고, 내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애썼다.

많이 후회하지는 않는다.
삶의 여유를 톡톡히 누렸다는 것에는 대체로 만족한다.
평생 빡빡하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는 한 번의 삶 속에서
이토록 편안한 시간이 단 한 번도 없다면 그 삶은 너무 건조하고, 슬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2003년에는 내가 조금 더 열정을 갖길 희망한다.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해 나갔으면 좋겠고,
당당하기 보다는 현명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학생이란 온실을 벗어나 졸업을 맞이하게 될 2003년에는
지금까지의 삶을 포기한 채 취업을 할 지도 모르겠고,
도전이든 도피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올해보다는 더 큰 선택의 기로에 맞닥들일 것은 분명하다.

나는 이러한 내 삶의 문제 앞에서
현명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하여 내년 이맘 때 다시 보게 될 이 글에서는
지금과 같은 후회와 아쉬움 대신
2003년 동안 흘린 내 땀방울을 자축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00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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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