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시험 (2002-12-28)

작성자  
   achor ( Hit: 1623 Vote: 20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개인

이번 한 주, 나는 내 삶을 시험했다.

그간 원체 게으르고 나태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삶을 살아왔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회사원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여왔었고,
나 또한 과연 그럴 수 있을 지 확신을 갖지는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물론 업무처리나 대인관계 등을 문제로 삼고 있던 건 아니다.
단지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잠을 자는,
패턴적이고 고정적인 삶의 연속을 참아낼 자신이 별로 없었던 게다.

그래서 나는 방학을 맞이한 이번 첫 주,
그것을 테스트하였다.



나는 이번 주 내내 아침에 감시단으로 출근을 하였고,
저녁까지 일을 하였으며, 퇴근하여서는 너무 늦지 않게 잠을 잤다.

점심시간에는 짬을 내어 사람들을 만났고,
퇴근 후에는 동료들과 술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으며,
버스에서는 신문이나 책을 읽었고,
또 가끔은 영화를 보다 잠들기도 하였다.

곧 나는 이번 한 주를 대개의 직장인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살아봤던 게다.

나는 한 주가 끝난 오늘, 이번 시험이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심지어 지난 27일에 있었던 세미나까지도 치뤄냈으니 더욱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그간 세미나에는 여러 차례 참석해 봤지만
내가 주최자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치뤄본 세미나였다.

공문서를 작성하고, 사람들을 초대하였으며, 명패를 만들거나 인쇄물, 프랜카드 제작하는 등
물론 실제로 하기엔 다소 따분한 점, 없지 않았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즐거운 일이었다.

27일 아침까지 인쇄물이 나오지 않아 영등포 인쇄상가를 직접 뛰어다니기도 하였고,
촉박한 시간 때문에 추운 날씨 속에서 마음껏 뛰기도 했으며,
택시와 지하철을 분주히 바꿔가며 서울의 교통 지옥을 체감하기도 하였다.

드라마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 하게 성공해 내는 편이지만
내 현실은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 하게 시간에 조금 늦어버렸는데
어쨌든 꽤나 드라마틱 하였던 이번 세미나 준비는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적어도 한 주만큼은 패턴적인 삶도 살아볼만 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앞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할 지도 모르는데
고작 한 주 가지고 패턴 운운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을 자는 것이 나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확실히 공표하였음에 만족한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며 패턴적인 삶을 사느냐는 역시 중요한 문제 같다.
이번 주는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또 세미나라는 큰 이벤트가 있었기에
보다 즐겁고 덜 따분할 수 있었다는 그 가능성은 충분히 감안한다.
매일 반복적인 일이 거듭되는 일상의 무료함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끝으로 이번에 느낀 것 중에 한 가지가 기획의 힘이었는데
그간 기술자들과 일을 많이 하다보니 만들어 낼 수 있으냐,의 기술적인 면에 초점이 많이 쏠려 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일을 추진해 가는 그 과정에서
인간 관계와 이해 관계,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밀약과 상호 협력 등을 통해
어떤 일의 성패가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정말 훌륭한 상품이라면 인터넷을 통한 무제한적인 대중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델은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또 다른 현실에서는
예산을 써야만 하는 정부기관과 자사 이익을 무엇보다도 중요시 하는 기업,
그리고 공익을 핑계로 자신의 이득을 감춰놓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통하는 보다 능률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길도 있음을 배웠다.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009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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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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