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이번 학기 성적이 나와버렸다.
여전히 엄청나다.
그렇지만 이번 학기 얻은 한 가지 커다란 소득이 있긴 하다.
나에게도 이제 약간의 안면이 있는 교수님이 생기게 된 것.
그간 나는 학교에서 외로웠다.
아는 동기, 선후배도 없는 데에다가
교수님이라면 안면 있는 분이 전혀 없기에 나는 학교 생활이 진실되지 못했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둘 다 전혀 보지 않았음에도
그 교수님은 B+이라는 내 인생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놀라운 성적을 주신 게다.
물론 수강생이 20명 이내여서 절대평가가 가능했다는 행운도 있었지만.
곧 내가 B+을 맞음으로서 다른 사람의 성적이 떨어지는 상대평가가 아니기에 죄책감도 없다는 것.
시험을 둘 다 못 본 후 교수님과 연락이 닿지 않던 어느 날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내가 자느라 전화를 안 받던 사이 교수님께서는 음성과 문자까지 남겨놓으셨던 게다.
자. 학생 하나하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시는 교수님이라면 살만 하지 않은가.
교수님은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셨고,
나는 여전히 시간에 쫒기다 결국 리포트는 작성하지 못한 채
그저 내 삶의 이야기나 몇 장 써보냈을 뿐인데,
무려 B+이나 주셨던 게다.
어찌 감동 받지 않을 수 있으리.
나는 내가 받은 은혜는 어떻게든 꼭 갚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힘 없고, 무지해서 잘 해내고 있지 못하다만.
경제학 교수님으로서 내가 아처웹스.를 잘 꾸려 나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내가 교수라면 내 제자가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게 없을 것 같다.
나는 이제 다시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려 한다.
이번에는 성적을 구걸하는 그런 메일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한 그 마음을 전하는 그런 메일을 말이다.
비록 그 과목에서는 B+을 받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성적이 안 좋아 특별히 나아질 것도 없겠지만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다.
B+ 맞았다는 것보다 내 삶을 이해해 주신 교수님이 계시다는 게.
아. 그리고 오늘 수강신청도 했는데,
다음 학기는 좆돼버릴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전공을 들을 수 없어서 아무래도 서울, 수원을 왕복하며 학교에 많이 가야할 것만 같다.
최악이다.
이번 학기.
학고도 안 맞을 것 같고, 위험했던 F도 없을 것 같으니
그나마 만족한다.
지금은 학교가 나를 구속한다.
떠나고 나면 그리워할 것을 알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하루 빨리 학교를 벗어나야겠다.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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