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2001-11-28)

작성자  
   achor ( Hit: 1344 Vote: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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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벌써 기말고사를 보았습니다.
사실 기말고사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아는 건 아닙니다.
지난 주부터 다시 수업을 들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지금 중간고사를 볼 턱도 없고, 또 쪽지시험 치고는 너무 거창했으니
저로서는 기말고사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주에 강의실에 가보면 알겠죠.
기말고사였다면 수업을 안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학교를 잘 가지도 않으면서 굳이 시험 얘기를 꺼내는 까닭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교과목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데이터를 사무적으로 다루는 법을 배우는 수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초기 거창한 계획과는 달리 수업은 고작해야 Excel 같은 걸 배우는, 그런 기본 수업이었죠.

지난 주 다이어리에 써놔야지 했으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로 적어놓지 못하고 지나간 얘긴데,
지난 주에 이 수업에서 저는 완전히 주목을 받고 말았었습니다.

이 수업은 심야에 하는 수업이라 용팔도 같이 듣지 않아 혼자 듣는다는 특징 한 가지와
학교 특성상 인문계생들만 모여있는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컴퓨터 수업이라는 특징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지난 주에 오랜만에 학교에 간 터,
이 수업 역시 중간고사를 보지 못해서 어떻게든 중간고사 못 본 걸 만회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학교에 갔던 것이었지요.

수업이 끝나고 조용히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릴 생각이었는데,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VB를 다뤄본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살며시 손을 들었지요. ^^;
역시 인문계생들밖에 모여있지 않아서 손을 든 사람은 저 혼자였습니다.
교수님은 VB와 Excel을 연동하여 사용해본 적이 있는지을 제게 물어보시더군요.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께 중간고사 못 봤다는 사정을 말씀드리려 했더니
오히려 교수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VB와 Excel 연동으로 무언가 만드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VB는 제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부족한 점 많은 게 사실이었거든요.
그리하여 VB는 예전에 많이 썼지만 요즘은 시장의 수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asp나 php 같은 웹스크립트, 그리고 Excel 대신에 ado 같은 걸 쓴다고 이래저래 둘러대었습니다.
교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셨을 때는
언제나처럼 경찰청, 삼성전자 등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나불거렸지요. --+

아. 그랬더니 교수님께서는 저를 고수로 보신 것이었습니다.
중간고사도, 리포트도 못 냈기에 어떻게 해야하냐고 여쭈었더니
교수님 왈,
"자네, 이런 거야 다 하지 않나?"
그러시면서 이번 주에 있을 시험 문제를 막 가르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

다만 문제는 제가 Excel을 잘 몰라서 교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시험문제가 무슨 얘긴지 몰랐다는 데에 있었지요.
저는 리포트를 잘 쓰지도 않고, 사무직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기에 Excel을 써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계신 교수님한테 그게 뭐죠? 여쭤볼 수는 없는 일.
그저 예, 아 그거요? 그럼요~ 다 알죠~ 하면서 대충 넘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리곤 이번 주 시험.
시험문제를 받아보고는 처음 써보는 Excel임에도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MS 프로그램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 데다가 시험 문제에 countif 함수나 sumif 함수를 쓰라고 다 말해줘서
뭐 마우스 오른쪽 클릭하거나 메뉴에서 대충 찾으면 다 해결이 됐던 것입니다.

속으로 '돋나 쉽다, 아 다행이다' 하고 있을 무렵
남은 시간이 5분이라는 조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제가 천천히 한 건 아닌데 시험시간이 20분으로 워낙 짧았습니다.
문제는 또 적지 않았고요.

저야 함수나 메뉴 등을 찾아가며 하느라 시간을 불필요하게 소모했습니다만
매일 Excel 배우던 다른 학생들은 각각의 메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에 금새 해버렸나 봅니다.

결국 시간은 다 지나고 말았고,
저는 풀다 만 답안지 디스켓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지요. !_!

강의실을 나오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보고 난 후 그런 안타까움은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험에 신경 많이 쓰던 중학생 시절에
쉬운 문제 나와 다른 친구들 미리 다 풀고 잘 때도 저는 보고 또 보고 하는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알던 문제를 실수로 틀리기라도 하면 정말 억울한 심정까지 느끼곤 했었지요.

이미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느낌을 저는 오늘 받았던 것입니다.
평소 전공 시험에서는 '교수님 죄송합니다' 같은 거나 쓰고 제일 먼저 시험장을 빠져나왔어도 아무 생각 없었는데
오늘은 달랐습니다.

비록 Excel 같은 거 쓰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컴퓨터에 관한 시험이었고,
또 경제학 같이 무슨 얘기인지 몰라서 못 쓰고 나왔던 것도 아니라 알면서도 시간에 쫒겨 풀지 못했다는 게
안타까웠던 것 같습니다.

아. 차라리 시험 보지 말고, 또 교수님 찾아가서
'아, 그런 거야 다 알죠~' 한 번 더 구라쳐줄 걸 그랬나 봅니다. --+

어쩔 수 없지요. 이미 지나간 것을. ^^;
어쨌든 좀 이상하긴 합니다.
워낙 오랜동안 공부를 안 해서 그런지 요즘은 시간이 나면 공부도 한 번 해보고 싶고, 또 시험도 잘 보고 싶어집니다. ^^;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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