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69 사람의 아들 (200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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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사사 게시판』 37229번
 제  목:(아처) 문화일기 169 사람의 아들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9/27 16:52    읽음: 10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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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아들, 이문열, 민음사, 1979-1987, 소설, 한국
        
        '위대한 지혜'는 내가 바라던 순수한 惡의 형상을  충실히 
      나타내 주었다. 이전에 누차 떠들어왔듯이 나는 야훼와 같은 
      善한 神의 독주를 참기 힘들어했었다. 정령 神이 인간을  창
      조했고, 또 神이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자율의지  같은 
      어설픈 개념을 굳이 들먹이며 자신의 가장 빛나는  창조물인 
      인간을 시험하려는 유치한 장난을 치지 않았을 것이기에  인
      간 내면에 어쩔 수없이 갖고 있는 본성, 소위 남보다 더  먹
      고 싶은 마음이나 남을  짓밟고 대신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 따위를 쉽게 납득할 수 없었었다. 그리하여 나는  善의 
      神과는 다른, 그렇지만 동일한 선상에 존재하는 惡의  神-물
      론 이는 세상의 가벼운 惡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것이 이문열이 말하는 '위대한 지혜'와 아주  흡
      사한 개념이었던 게다.
        
        그리하여 지혜가 내린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의 행보
      는 인류의 영원한 구세주이자 善이 내린 사람의 아들,  예수
      보다 훨씬 내게 깊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독실한 기독교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이
      책을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이가 어떤 종교를 믿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데 
      거리에서 무엇보다도 열심히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 같은 사람을 보면 답답함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그들
      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종교가 없는 내가 유독 기독교에 대해 보다 높은 
      반감을 갖고 있는 까닭은 나는 기독교의 독단이 참 싫다. 어
      렸을 적에는 나 역시 기독교에 몸담고 있었던 바, 내가 위급
      하고 내 마음이 약해질  때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는 소심한 나 따위가 오, 위대한 우리 주님을 욕되
      게 하는 일은 물론 말이  안 되는 모순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독교의 독단이 참 싫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다. 초
      기 기독교가 처했던 환경, 곧 엄청난 민속종교 가운데서  그
      나마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배타성을 그들의 말씀  속에 
      넣어뒀어야 했고, 그 말씀을 무조건 신성시 여기도록 강압해
      야 했다는 건 알만하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단적으로 수행
      하는 기독교도들을 도무지 봐줄 수가 없다. 어제 실형 8개월
      을 선고받은 단군상을 깨트린 사이비 목사 같은 반사회적 인
      물이 더 이상 기독교에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
        
        종교는 어차피 사회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종교란 개인적
      으로는 삶의 이념이 될 수도  있고, 커다란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개인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개인적인 
      믿음이나 신념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걸 용납 못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개
      인적인 神을 모두의 신으로 착각하고 말아버린다. 물론 다른 
      한 손에 칼을 들고  타종교를 배척하는 종교도 있지만  그건 
      내게 멀리 있고, 또 종교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경전에까지 
      타종교에 대한 경고를 핵심화해 놓은 걸 본 적은 없다.
        
        '사람의 아들'은 기독교가 내재하고 있는 이 같은  모순을 
      하나하나 집어나간다. 특히 액자식 구성으로 내부에서  아하
      스 페르츠의 행보를 통해 기독교의 모순을 생생하게  그려냈
      다면 외부에서는 민요섭의 죽음을 통해 당시 70년대  한국사
      회가 갖고 있던 모순을 종교에 비유해 해결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나는 책을 바로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책을  넓은 
      안목에서 사회적으로 보지 못한 채 내가 바라던 순수한 惡의 
      형상화에 열광하며 오직 종교적으로만 빠져들었던 것  같다. 
      편협한 글읽기는 바르지 못하지만 좋은 소설이란 독자의  경
      험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야 하니 뭐 그럴 수도 있지. 허
      허. ^^;
        
        책을 읽으며 가장 깜짝 놀랐던 부분은 아하스 페르츠가 다
      양한 종교를 접하게 되는 부분이었는데 다른 여느  종교에서
      는 소설의 주제를 망각한 듯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우리 
      나라에서 많은 층을 확보하고 있는 불교에 대해서는 아주 간
      단히 넘어가는 부분이 의외였다.
        
        특히 마치 커다란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이 나를 부르르 떨
      게끔 했던 아하스 페르츠의 명언,
        불타는 그들의 신앙을 추상적인 범신론에서 위장된 무신론
      으로 바꾸었다. 해탈이란 이름을 가진 욕구의 선택법, 천 개
      의 작은 욕망은 버렸으나 그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욕망을 얻었다. 해탈을 향해 타오르는 그 치열한  욕망은 
      어쩔 것이랴. 만 개의  번뇌는 껐지만, 그걸 위해  타오르는 
      하나지만 만 개를 합친 것보다 더 세찬 번뇌의 불길은  어쩔 
      것이랴.
        
        나는 오히려 불교의 고요한 분위기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
      었는데 사실 불타는 神이 될 수 없는, 그의 말 그대로  위장
      된 무신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책을 읽고서야 깨달을 수 있
      었다. 애지愛知라는 인간의 지식  위에서 탄생한 神은  神이 
      될 수 없었다. 또한 해탈에 대한 더 큰 욕구, 그 커다란  모
      순은 실로 나를 경악케 하는 위대한 발견이었다. 종교를  이
      야기한다면 중요할 법한  것을 유달리 간단하게  말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느낌의 파괴력을 더했다.
        
        종교는 맹목적인 믿음이기에 종교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나 
      또한 깨닫고 있다. 인간의 지식 위에서 출발한 이성적인  神
      은 안락과 평화를 주는 전능적인 神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민요섭의 기독교에의 회귀는 아쉬움이 컸다. 神과  대적하다 
      인간의 초라한 지식과 과학의 한계를 깨닫고 神께  회귀하는 
      모습은 너무 식상하다.
        
        종교가 없는 사회를 꿈꾸지는  않는다. 단지 종교의  힘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사회를 경계할 뿐이다. 온전한 인간의 이
      성을 마비시키는 맹목적인 종교에의 강요는 반드시 지양되어
      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맹목적인 종교는 인간의 사회성  또
      한 제거하여 인간을 독단과 편견에 빠지게 하고, 더  나아가
      서는 사회 전체를 불화와 어긋남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
      문이다.
        
        그렇지만 또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은 애지
      는 神이 될 수 없지만 神이나 종교와 비슷한 정신적인  결막
      을 만들 수밖에 없어 나 같은 무교도들 또한 독단에 빠질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노약자나 메조키스트들을 위해 종교가 해
      야할 일은 충분히 많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2000.09.22 21:35 적어도 내가 메조키스트는 아니었음에 감사한다.
                 그러나 역시 무지몽매함은 어쩔 수 없다.

ps. 참 오랜만에 문화일기를 써본다.
    감회가 새롭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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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