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4713번
제 목:(아처) 가을에는 사랑을 해야지...
올린이:achor (권순우 ) 99/10/25 23:55 읽음: 52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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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날이다.
원고 청탁을 한 건 받았다.
낮에 낯선 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었는데 30대 중반의
남자 목소리의 그는 내게 만나자고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오후, 으슥한 곳에서 만나게 됐는데 그는 돈 10만원을 선금
으로 제시하면서 글 하나 써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처음엔 자신이 없어서 거절하고 있었는데 빳빳한 만원 짜
리 지폐 열 장을 보니 갑자기 마음이 변해버린 게다. 그리고
지금 후회하고 있다. 아, 어쩌지?
학원에서 쉬는 시간에 생각했다. 苦盡甘來라고. 슬픈 일이
다하면 기쁜 일이 오는 법이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 다이어
리를 잃어버려 연연하지 않으려 했지만 찹찹한 마음, 금치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사랑은 쉬운 게 아니란 생각을 다시금 한다. 生의 인연이
란 쉽게 맺어져서는 안 된다는 느낌. 급조된 사랑은 쉽게 깨
어지기 마련인 게다.
충분히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만들어
진 사랑은 역시 순간적이다. 너무도 사랑해서 도무지 고백하
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을 때, 그럴 때에 비로소 진실한
사랑이 시작되는 건가 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쉬워만 보였
네. 지난날들이 생각나는 밤이다.
다이어리를 새로 샀다. 혹자는 어차피 또 잃어버릴 것, 뭐
하러 다시 쓰느냐고 이야기하지만 마찬가지다. 어차피 헤어
질 것 뭐하러 다시 사랑하느냐와 같은 이야기. Carpe Diem이
다.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면 그만이다.
역시 苦盡甘來. 기쁜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오는 법이다.
이 오묘한 삶의 규칙성을 알고 있기에, 또 23살, 이제는 꽤
나 익숙해진 일이기에 슬픔 같은 느낌은 특별하지 않다. 다
만 내 삶의 역사 속에 또 하나의 새로운 신기록을 작성했구
나, 하는 생각뿐이다.
그리하여 삶은, 역시 살아볼 만 하다.
98-9220340 권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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