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1174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56
올린이:achor (권아처 ) 99/01/21 00:34 읽음: 38 관련자료 있음(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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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
참 오랜만이야. 어디선가 묵묵히 공부하고 있을 것만 같
았는데 네가 군대라니... 의외야. 의외. ^^ 가끔 네가 떠오
를 때가 있었어. 조금은 고지식하면서도 잘 못하는 술에 취
할 때면 누구 못지 않은 사이코적 기질을 선보였던 네 모습
을 떠올렸었어. 어때? 잘 살고 있는 거야? 그래. 종종 찾아
오라구. 우리 속에는 아직 네가 있어!
헌,
진심으로 가입을 환영함. 새로운 상황에서 얼마나 버티
는가의 문제는 전적으로, 무척이나 당연하겠지만, 그 적응력
에 있을 터인데 운 좋게도 너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여 오랫
동안 함께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래. 내일 봐. ^^*
1. 가슴
주위를 보면 여자의 가슴에 크게 신경 쓰는 녀석들이 있
다. 가슴 큰 여자라도 지나가게 되면 꼭 나를 붙들곤 "저 여
자 봐 봐"라고 외치는 그들. 그들을 보면 난 어느 소설에서
가슴 큰 여자가 말한 고통이 생각난다. "가슴 큰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데요. 남들은 다들 부러워하겠지만 이 큰 가슴으
로 누워 잠자려 하면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아요..."
그렇지만 난 가슴의 크기에 연연하지는 않는 편이다. 믿어
지지 않겠지만 여자에 도통 관심이 없던 학창시절, 내 유일
한 성욕이라면 여자의 가슴을 만져 보고픈 것이었다. 그 시
절 느낄 만한 순수한 키스도, 성인에 대한 동경의 섹스도 아
닌 단순한 가슴 만지기! -_-;;
참 푹신푹신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스폰치처럼 푹
신한 것들을 만지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난 그런 기분으로
여자의 가슴을 만져 보고 싶어했다. 이것조차 성욕이라 말해
야 하는 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남자들의 입을 통해 여자의 가슴 크기 얘기가 나오
면 난 앞서 말했던 그 소설 속의 여인을 떠올리면서 오늘도
열심히 가슴 크기 늘리기에 열중하고 있을 세상 많은 여인들
을 떠올려 본다.
가슴 작은 여인들이여! 내게 오라! 허허. ^^;;
ps. 가슴 큰 여인도 환영함. --;;
2.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
쪽지를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보면 [이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
론 이야기는 자연스럽다. 어색함도, 두려움도, 떨림도 없다.
그런데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막연한 느낌, 그런
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긴 하다. 그저 술이
나 한 잔 하자고 말을 건네며 슬쩍 만나 볼 수도 있는 일이
니. 그렇지만 어쩐지 그러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건 좋은 기억은 그 상태로 남겨 두고픈 기분과도 비슷한
것일 게다. 지난 시간 속에서 아름다운 만남으로 기억되는
사람을 다시 만나 굳이 새로운 기억을 첨가하고 싶지는 않
은, 소중한 것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 그런 거 말이다.
그러기에 아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과 쪽
지를 나눌 때면 난 씁쓸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3. 방치차량
방치차량이라는 게 있다. 차량 소유주가 어찌할 줄을 몰라
그대로 놓아둔 상태의 차량, 그런 걸 방치차량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인 단어.
난 그 차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세상 모
든 일이 다 어떻게 처리해야겠다고 쉽게 결정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모든 걸 내버려둔 채 방치하고플 때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을 때, 문제를 포기해
버리고 싶거나 문제로부터 도피해 버리고 싶을 때.
물론 이렇게 하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전혀 도
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업무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문제를 그저
내버려두고 싶을 때가 있다...
4. 머리카락
만나기로 한 친구가 오지 않았다. 이제 곧 도착한다는 전
화가 오기 시작한 지가 벌써 1시간. 추워진 날씨 속에서 이
번 지하철에는 오겠지...하며 기다려 본다.
그러나 여전히 무심한 지하철...
그러고 보면 내가 지각을 자주 하여 약속을 잘 지키지 못
하는 만큼이나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지각을 잘 기다려 주
는 것도 같다.
과거 널널하던 시절에는 기다림에 더욱 막강하여 별 생각
없이 언젠간 오겠지...하는 마음으로 평온할 수 있었는데 시
간은 가고 있고, 벌써 담배 한 갑을 거의 다 소모한 듯 할
때, 그 땐 사실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예전에 나를 2시간 기다렸던 일을 생
각하며 묵묵히 참아 냈다. 나 역시 알고 있다. 2시간을 기다
리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2시간동안 서점에서 기
웃거리던 그 아이에게 그 날 적절히 보상해 주지 못한 기억
에 미안한 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난 느지막이 친구가
도착했을 때 슬며시 웃어 줄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여전히 친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난 내 옷에
서 한가락 긴 머리카락을 발견해 냈다. 이렇게 긴 머리카락
이라니... 이건 분명 여자의 머리카락일텐데...
가만히 앉아 난 이게 누구의 것일까 하며 궁상을 해봤다.
그 외에는 담배 피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으므로. 그렇지만
난 의심 가는 그 어떤 여자도 찾아낼 수 없었다. 최근 절제
된 생활로 인해 여자는 전혀 만나지 않았으며, 아, 만났다면
그 지난 번 내 친구의 애인, 만약 그 친구의 애인이라면 그
녀의 머리카락이 내 옷에 묻어 있을 턱이 없었다.
어떤 여자의 머리카락일까...
왠지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향기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나를 그 추위 속에서 떨게 한 그 친구는...
다름 아닌 이/창/진/
개새끼! 주금이야! 주금! --;
5. 이별
며칠 전 끄적끄적 54, 55을 통해 이야기했던 그 친구의 이
야기.
그 친구의 인생은 참으로 간결하다. 한 여자를 만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주어 버리는 관계가 되었다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을 해 버렸으니. 굵고 짧게!
이럴 경우 보통 남자가 차 버렸을 거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그와 정 반대였다. 그 친구의 애
인은 또 다른 그녀의 애인이었던 한 유부남에게 결국 가 버
렸던 게다. 그래서 내 친구는 무척이나 슬퍼했다.
과연 그 유부남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내 친구를 차
버렸을까? 유부남, 그 이름만으로도 결점이 느껴지는데...
결국 내 친구는 원래 있었던 그 또 다른 약혼자에게로 돌
아가 버렸다.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처음 그대로. 그런
것이다.
뭐 한 여름밤의 꿈을 곁에서 지켜본 느낌이 들었다.
과연 뭐가 사랑이란 말인가!
과연 왜 굳이 결혼을 한단 말인가!
98-9220340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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