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부터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밥을 빨리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종종 있기도 했었기에
밥을 빨리 먹고자 노력해야만 했던 경험도 종종 있었다.
나는 그간
이 속도의 문제를 그저
덧니 등에 의한 이빨의 부정합, 즉 물리적인 요인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었다.
요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깨닫는다.
대개 회사에서 먹게 되는 점심, 저녁 시
내 밥 먹는 속도는 그간의 본인기록을 월등히 능가하고 있을 뿐더러
타인 대비 하여서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이빨을 교정한 것도 아니고,
씹는 방식을 바꾸거나 속도를 증가시킨 것도 아닌데
속도의 차이가 나게 된 것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배고픔의 차이였다.
나는 (아마도) 태생적으로 배고픔을 그닥 느끼지 않는 편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며칠만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구조된 사람을 볼 때는
아무 것도 먹지 않을 채로 버티는 게임이 있다면
수위권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간 나는
배고픔을 그닥 느끼지 않았을 뿐더러
배고픔을 잘 참아내기도 했고,
배고픔을 금새 잊어버리기도 했고,
굶는 것에도 익숙했다는 게다.
내가 배고픔을 그닥 느끼지 않은 데에는
활동량이 적었기 때문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간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저 숨쉬는 것에 추가적으로 할 일 없이 빈둥대는 게 고작이곤 하였으니
이도 당연한 면이 있다.
일단 요즘은 육체적으로 매일 2회, 여의도공원을 횡단하고 있다.
버스들이 여의도환승센터로 가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시 장구한 운동을 하는 게다.
게다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것도 많아진 탓에
정신적으로도 활동량이 급증하긴 했겠다.
물론 그렇다고 배고픔을 상시 느낀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식탁 앞에 앉으면 허기진 느낌은 받고 있다.
내 씹는 행위를 가만히 살펴보니
씹는 속도가 빨라진 것도 아니고, 씹는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저 덜 씹은 채로 쉽게 넘기고 있었다.
즉 밥 먹는 속도는
공복감에 기인한 과정의 생략,이라 압축할 수 있는 것이었다.
두 가지를 결론 내린다.
1.
역시.
열심히 하는 이가 즐기는 이를 이길 수 없는 법이구나.
특정 상황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빨리 먹으려 해도 공복감에 즐겁게 먹어 치우는 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2.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내 노동량은 현격히 증가했구나. ㅠㅠ
-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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