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惡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랙이야.
순수한 惡은
관념으로서, 개념으로서, 가치로서 존재하는 거야.
흑백논리가 되어선 안 돼.
善하지 않은 것은 善하지 않은 것일 뿐야.
善하지 않은 것이 惡이어서는 안 돼.
순수한 惡은
善의 대립된 가치로서
나쁘지도, 악하지도 않아.
다시 말해 순수한 惡은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惡心, 악한 마음이야.
특별히 가시적인 현상이 없어서 잘 설명하진 못하겠어.
그나마 가장 비슷한 건
아주 힘겹게 갓난아기의 이기심에서 찾아볼 수 있어.
아무런 사회적 영향도 받지 않은 갓난아기의 본능.
쌍둥이 동생을 밀쳐내고 먼저 어미젖을 빨려는 그 이기심.
고작해야 이게 순수한 惡, 비스무리한 편이야.
그렇지만 정확히 그건 또 아냐.
순수한 惡의 모습을 차근차근 잘 살펴보렴.
아무도 그것을 악하다고 말하지 못해.
아무도 그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해.
그것은 아주 신성한 가치로서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처럼 우러러 봐야지만 볼 수 있어.
우리 눈에 쉽게 보이는 더럽고, 추한 나쁜 것들을
순수한 惡으로 오해하지는 말아 줘.
내가 다 슬퍼져.
사회 속에서 얻어진 조잡한 욕심은
善의 적일 뿐만 아니라 순수한 惡의 적이기도 해.
그것들은 惡의 이름을 더럽혀.
난 그게 싫어.
惡이 무시당하는 게 싫어.
난 그 순수한 惡이 되고 싶어.
惡의 化身으로서 이 땅위에 군림하고 싶어.
어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니?
잘 설명하지 못하겠어. 그게 안타까워.
태초에 唯一神이었는지, 多神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믿는, 의미하는 神은 틀림없는 多神이야.
거죽을 모두 벗겨버리곤
善의 신과 동등한 위치에 순수한 惡의 神으로서 존재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