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삐] 붉은 매는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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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lpi96 ( Hit: 164 Vote: 1 )


◇ 검은 매 추락하다. Black Hawk Down


◆ 채 다섯 살도 안돼 보이는 소말리아 꼬마가 미친 듯이 AK-47을
쏴대고 있었다.

1992년 조지 부시(George Bush)가 소말리아에 해병대를 파병
했을 때, 전쟁을 염두에 두지않았다. 시민군이 약탈하지 못하도
록 식량 운반 루트를 지켜서, 기아 상태를 해소하려 했을 뿐이
다. 1991년 쿠웨이트에서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축출
했을 때처럼, 이 작전은 명분도 좋고 성공 가능성도 높아보였다.
하지만 일년도 지나지 않아, 모가디쉬(Mogadishu)의 미군은 느
낌도 모양새도 완전히 전쟁 상태인 어떤 상황에 뒤얽혀버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리고 정확히 누가 미군의 적이었을까?
마크 보든(Mark Bowden)의 <검은 매 추락하다: 현대전 이야기
Black Hawk Down: A Story of Modern War>는 모가디쉬의 불행한
전쟁을 자세하게 되짚는다. '흑해 전투 The Battle of the Black
Sea'로 알려진 이 전투는 베트남 전 이후 미군이 참여한 전쟁
중 가장 참혹했다. 15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미군 18명이 사망했
고, 70여명이 부상당했다. 소말리아인은 500여명-모두 전투병은
아니었다-이 죽었고, 1000명이 넘게 다쳤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The Philadelphia Inquirer" 기자였
던 보든은 당시 모가디쉬에 없었다.(당시 모가디쉬에는 미국인
기자가 한명도 없었다.) 하지만 전투 참가자 인터뷰와 군사기록
을 이용해 아주 생생하게 설명한다.(처음엔 신문에 연재되었다.
한시간 짜리 비디오와 CD 롬, 인콰이어러지 웹 사이트에 오디오
와 비디오 클립이 추가되자 하나의 멀티미디어 현상이 되었다.
보든은 현재 블록버스터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Jerry Bruckheimer)
와 손잡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책은 마치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스폴딩은 손가락 끝에 감
각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곧
쇼크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채 다섯 살도 안돼
보이는 소말리아 꼬마가 미친 듯이 AK-47을 쏴대고 있었다. 총
구에서 눈부신 불꽃이 일었다. 누군가가 소년을 쏘았다. 소년의
다리가 마치 대리석에 미끄러진 것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소년은 땅에 널부러졌다. 모든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니, 꿈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갔다. '디-보이(D-boys-델타
포스 작전 지휘관)'는 운전하면서 지옥처럼 총알을 쏟아냈다.
그는 무기를 한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스폴딩은 그의 총이 숨도 돌리지 않고, 소말리아인 세명을 쏘아
맞추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감동받았다."
오랜 독재가 반란 세력에 의해 종식된 1990년 이후, 소말리아
에는 정권이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UN은 새로운 정
권에 권력을 넘겨주고자 '건국' 사업을 계획했다. 소말리아 각
파벌의 지도자에게 권력을 나누도록 화해를 조성하려 했다. 하
지만 독재자를 축출하는데 주요 역할을 담당한 하브르 기드르(Habr
Gidr) 일족의 지도자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Mohammed Farah Aidid)
는 권력을 분담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나라를 지배할 권리
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디드 장군의 군대는 UN을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1993
년 6월, 그들은 평화유지군을 공격해서 파키스탄인 24명을 죽였
다. 아이디드는 모가디쉬를 점령한 UN군 지휘관 조나단 호우(Jonathan
Howe)-그는 미국인이었다-의 머리에 현상금 2만 5천달러를 걸었
다.
UN의 아이디드 사냥은 대실패로 끝났다. 7월에 헬기가 하브르
기드르 일족의 수장들이 모이는 집에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국제 적십자사는 이 와중에 사망자
54명을 포함해 사상자 250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기사꺼리를
향해 달려가던 기자 4명은 분노한 폭도에 살해당했다. "기자의
죽음이 전세계인 분노를 소말리아에 집중시켰다" 보든은 적는다.
"하지만 모가디쉬 사람들은 오히려 갑작스러운 공격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비행기공습은 여러번 있었지만 아이디드는 잡
히지 않아다. 곧 소말리아 사람들은 그를 당당한 영웅으로 떠받
들게 되었다. UN과 헬기는 소말리아 사람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8월엔 클린턴은 아이디드를 잡기위해 최정예 부대를 보내달라
는 호우의 요청을 승인했다. 대부분 '아미 레인저 Army Rangers'
소속인 특공대 대원 450명이 파견되었다. 레인저는 곧 새로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강력한 검은 매(Black Hawk) 헬리콥터
프로펠러 기류는 주변 민가 지붕을 전부 날려버렸다. (심지어,
엄마가 안고 있던 아기도 날아갈 정도였다.) 빨리 아이디드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레인저들은 빈약한 정보에 의지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한차례 공습에서 아이디드의 부관 몇 명을
체포하자 진전이 있어 보였다.
그런 공습중 하나-10월 3일 전투-가 '흑해 전투'다. 목표는
아이디드의 고위 부관 두명이었다. 그들이 하브르 기드르 거점
흑해 연안의 집에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델타포스(Delta Force)
로 더 잘 알려진 최정예 슈퍼 군대가 레인저들을 이끌고 헬기에
올랐다. 지상전을 통해 떠날 계획이었다. 작전은 30-40분 걸릴
예정. 하지만 곧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 레인저가 70피트 상공에서 헬기 밖으로 떨어졌다. 지상전
은 예상보다 치열했다. 검은 매 한대가 정조준 된 로켓 수류탄
에 격추되었다. 서술 시점은 전투 참가자 사이를 빠르고도 규칙
적으로 옮겨간다. 아주 젊고(평균 19세), 신체 건강하고, 목적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없이, 흑인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원주민'을 '스키니 Skinnie'나 '새미 Sammie'라
고 부른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된다.
자칭 "천하 무적 강자이자 철갑으로 무장한 복수의 화신", 레
인저들은 작전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혼란과 공포에 빠진
다. 독자는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레인저가 되는지 알 수 있
다.
<검은 매 추락하다>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소말리아의 입장
에서 서술한 것이다. 보든은 1997년 모가디쉬 전투 생존자를 일
주일간 인터뷰했다. 그들의 말은 미국인에 대한 적개심을 이해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든은 소말리아의 변호사, 엔지니어, 전
미국 대사관 직원, 무리안(mooryan)이라는 총잡이-모가디쉬 거
리를 지배하는 전사들-도 만났다. 무리안은 아이디드를 섬기든,
섬기지 않든, 전투가 있던 날 미국인을 죽이겠다며 수천명이 나
타났다.
레인저들의 눈엔 도시의 모든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총을 들
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느낌은 그리 틀린 것이 아니었다.
"모가디쉬는 완전히 지쳐서 잔인해졌습니다." 미국에서 교육받
았다는 한 소말리아 변호사는 말한다. "전투에서 죽으면 전부
레인저 탓이 되죠" 한마디로, 레인저의 적군은 수백만 도시 인
구 전체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은 광기가 지배하기 마련이다. 검은 매의 대장은 자
기 헬기가 격추되기 전까지 "'새미' 군중 전부를 잔디 깎듯이
해치워" 버린다. 헬기가 격추된 후 (다른 한대도 시가지에 추락
했다. 나머지 두 대도 공격을 받고 고장나서 기지로 돌아갔다.)
추락한 지역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새로운 임무로 떠오르자
헬기를 둘러싼 싸움이 끔찍하게 전개된다. 지상군은 미로같은
거리에서 길을 잃었다. 그리고 산발적인 적의 공격에 뿔뿔이 흩
어졌다. 머리위에 떠있던 비행기는 라디오를 통해 엉뚱한 방향
을 지정했다. 지상군중 반수 이상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베트남
전에서 익히 경험했듯이, 한쪽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진보해 있
어도 지상전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투가 꼴 사나워지면서 군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일이 껄끄
러워진다. 그리고 몇몇의 말에만 의존하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전투를 이해할 수도 없다. 레인저와 디-보이 대부분은 적지에서
밤을 보냈다. 그 중 대다수가 살아 남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
다.
사실, 부상자 숫자를 놓고 보면, 미국이 전투에서 이겼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0월 3일 전투는 하브르 기드르의 승리다.
그래서 10월 3일은 이후 소말리아의 휴일이 되었다. 미군 시체
가 거리에 질질 끌리는 장면, 포로가 된 헬기 조종사 마이클 듀
란트(Michael Durant)의 공포에 질린 눈이 미국과 전세계에 투
영되었다. 워싱턴의 전쟁 의지는 깨져버렸다. 아이디드 사냥은
취소되었다. 미국 의원들은 미군이 UN지휘 아래 있다는 사실을
걸고 넘어졌다. 레인저는 항상 독자적으로 행동했는데도 말이다.
"흑해 전투" 덕분에 미국 국방부 장관 레스 아스핀(Les Aspin)
은 해고당했다. 국제적으로 소말리아 돕기 캠페인이 시작됐고,
UN은 18개월 후 짐을 싸서 소말리아를 떠났다. 아이디드는 1996
년 살해당했다. 소말리아에는 아직도 정부가 없다.
마크 보든은 소말리아에서 실패한 작전이 미국 군사정책에 "심
오하고 교훈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믿는다. 클린턴 행정부가 보
스니아와 르완다의 대량 학살에 대해 비굴하게 대항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과 우방국은 부패한 독
재자와 민족간의 폭력 사태를 지구상에서 싹 쓸어 버릴 수 있다
고 믿었다. (소말리아에서의 경험은) 그런 짧고 흥분된 시기를
종식시켰다."
보든은 한 역사적 전환기를 집어내서 꼼꼼하게 극화하고 있다.
<검은 매 추락하다>가 함께 있다면, 그 이상하고 지독한 전투는
잊혀질 위험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Black Hawk Down: A Story of Modern War> By Mark Bowden.
Illustrated. 386 pp. The Atlantic Monthly Press. $24.☆
┌─────────────────────────────┐
│ 너와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 '농부의 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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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