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문화일기 117 영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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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65 Vote: 1 )

+ 영웅시대, 이문열, 민음사, 1983, 소설

내가 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그 때 난 영웅시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다 읽기 전 다시 세상에 나옴에
그 시절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그러했듯이
영웅시대 역시 그렇게 내게서 방치되어 버렸었다.

Cosmopolitan을 주장하는 내게 있어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예찬은 쇼비니즘의 잔재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이 지극히 한국적인 소설은 내게 상당한 매력이었다.

난 이토록 소설 속에서 설정된 상황에 빠져 본 적이 없다.
영웅시대를 읽던 동안 난 내 자신이 그 격동의 세상을 살아가는
야심과 의욕으로 가득찬 한 젊은이였다.

어쩌면 우리가 비디오세대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6·25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이 있지 않았던가.
난 소설을 읽으며 막연히 그 장면들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있었나 보다.

TV 드라마로 더욱 알려지게 된 '여명의 눈동자'가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건서술에 중점을 눈 소설이라면
이 '영웅시대'는 이념과 전쟁의 근원에 관한 분석적 측면이 강했다.

해방 직후 혼란스로운 세상 속에서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 아나키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는 어떻게 이렇한 무가치적 이념들이 싹트기 시작했는지 철저히 분석했고,
또 6·25가 왜 이념의 전쟁이 아닌지, 단순한 남북전쟁인지 역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곤 그 대안으로 휴머니즘을 제시하는데
이 휴머니즘이 민족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가 망고이즘 따위로 변색되지 않는다면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이데아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난 그의 분석에는 동의를 했지만
그 대안을 믿을 수는 없었다.
민족주의...
그것은 외부로부터 고립된 자들의 무덤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아나키즘?
그건 단시일 내에 모든 인간이 자각하여 利他를 생각하는 性善이 되지 않는다면,
혹은 전능하신 신의 힘으로 모든 인간으로부터 욕심을 제거해 버리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이론적인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대안 없는 비평은 단순한 불평에 그칠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적절한 이념을
난 생각해낼 수 없었다.

현존하는 모든 이념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이념은 그 가치가 결여된 것이다.

읽고 난 후 난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랬다면 나 역시 그 변역의 물결 속에서
生을 건 내 뜻을 펼쳐볼 수도 있었을텐데...

하긴 이런 건 변명이다.
인간에게 있어 시대배경의 의미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시대 속에서도 항상 변화는 있다.
변화하지 않는 시대는 이미 소멸된 것이므로.

이문열, 그의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단어사용에 감탄하며
한국적인 미를 느껴보았다.
번역된 외국작가들의 작품으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그게 이문열 개인의 능력인지, 아니면 미숙한 번역자들의 무지인지는 모르겠지만.





981218 23:50 격동의 세월 속에서 살고 싶다.











98-9220340 건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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